2026-08-17 넛지 디자인
손을 놓는 습관
디자인에 재능이 없는 나는 고민한다. 에이전트가 만들어준 A안과 B안 중 어떤 것이 어색하지 않지? 이쁜 디자인은 바라지도 않는다. 어색하지만 않게, 디자인이 중요한가 기능이 잘 동작하면 됐지. 기능이 좋으면 디자인은 나중에 손봐도 된다고 그렇게 오해했다. 그런데 화면을 보고 사람이 실제로 기능을 사용하게 만드는 일이 바로 디자인이라한다. 기능을 사용하게 만드는 일은 어쩌면 기능보다도 중요한 일일텐데 나는 가장 중요한 일을 대충 에이전트에게 위임한다. 문구를 몇 개 뽑아달라 하고, 그중 하나를 고르고, 넘어간다. “이건 감각의 영역이다, 나는 그 감각이 없다”고 정리하면서.
『넛지 디자인』은 그 핑계에 대한 오래된 오해를 바로 잡는다. 제목은 디자인인데, 책이 말하는 건 기획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예쁘게 배치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를 먼저 읽고, 그 위에 구조와 의도를 얹는 일. 디자인은 보기 좋음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였다.
색을 고르고 여백을 맞추건 어찌저찌 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없었던 건 그 화면 앞에 선 사람이 지금 뭘 망설이는지, 뭘 무서워하는지, 뭘 확인받고 싶어 하는지를 먼저 묻는 습관이었다. 그 물음이 없으니 화면은 늘 반쯤만 완성돼 있었다. 보기에는 끝난 것 같아도, 실제로 누군가를 움직이는 데는 못 미치는 상태로.
포지션을 잡는 일
책은 자꾸 트래픽보다 전환율을 물었다. 사람을 많이 불러 모아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모인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쿠팡을 열 때마다 나는 이 화면이 예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정돈되지 않은 배치, 쏟아지는 배너, 눈을 어지럽히는 색. 그런데 나는 결국 산다. 원하지 않았던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몇 번 더 눌러야 할 곳에서 손이 먼저 움직인다. 이쁘지 않은 화면 앞에서도 나는 결국 그 화면이 정해둔 자리까지 걸어간다. 예쁜 디자인과 잘 파는 디자인은 다른 일이었다. 오래 보고 싶은 화면과, 결국 뭔가를 하게 만드는 화면은 애초에 겨냥하는 표적이 달랐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무엇 때문에 막혀 있는지를 정확히 겨눈 자리에 서면, 사람이 스스로 걸어온다고 책은 말했다. 핵심은 위치였다. 광고를 더 뿌리거나 문구를 더 다듬는 일보다, 애초에 어디에 서 있느냐가 먼저다.
에이전트가 똑똑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목표를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방법만 다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이전트는 시키는 대로 잘했다. 대신 뭘 시켜야하는지는 내가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프롬프트 앞에서 그때그때 판단이나 생각을 잘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프롬프트 앞에 서기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계를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