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8 도덕경: MZ 노자

도덕경

부족하다는 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대개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이미 아침에 잘 일어나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고, 씻고, 하루를 시작한다.

자꾸 반복하는 말에는 대개 부족함이 있다. 부지런해야 한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부지런함이 모자라고, 평정심을 강조하는 사람은 마음을 자주 놓친다. 좋은 말도 계속 입에 올리면 이상하다. 아직 말한 대로 살지 못하니까 자꾸 말한다.

도덕이라는 말은 보통 좋은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도덕이 생기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서로 지켜야 할 기준을 세우면 세상이 조금 나아진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노자는 반대로 말한다. 도덕경에는 대도가 없어지니 인의가 생겨난다는 말이 나온다. 인의라는 말을 따로 꺼내야 한다면, 이미 뭔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계속 성장해야 하는 사회

회사와 학교와 유튜브도 늘 좋은 말을 한다. 성공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좋은 말을 너무 자주 들으면 한 번 묻고 싶다. 왜 같은 말을 이렇게 많이 할까.

성공을 계속 말하는 사회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성장을 계속 말하는 사회는 지금의 자신을 충분하다고 두지 못한다. 생산성을 계속 말하는 사회에서는 쉰다는 말도 곧장 죄책감과 짝을 이룬다. 인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곳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

좋은 말을 계속 내세우는 사회에는 부족함도 많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더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하다 보면 부족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나은 몸, 더 그럴듯한 말투, 더 효율적인 하루가 차례로 나타난다.

자연스러운 부족함

사람은 원래 더 나아지고 싶어 한다. 배고픔이 농사를 만들고, 불편함이 도구를 만들고, 더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길과 배와 비행기를 만들었다. 더 벌고 싶고, 더 편하게 살고 싶고,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 덕분에 생활도 실제로 좋아졌다.

하지만 경제발전 하나로 모든 부족함을 설명할 수는 없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과, 계속 모자라다고 느껴야만 움직이는 상태는 같지 않다. 하나는 삶을 넓힐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끝없이 몰아세운다.

도덕경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만 하지 않는다. 욕망의 출처를 더 까다롭게 묻는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계속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회가 내 안에 넣어둔 말인가.

그래도 퇴사는 안되겠는데

퇴사 버튼을 누른다고 바로 자유가 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 돈도, 일도, 관계도, 기회도 사람들 사이에서 얻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전부 거부하면 집세와 약속과 일이 먼저 온다.

그래서 사회를 따르느냐 마느냐보다, 얼마나 따를지를 정해야 한다.

사회를 너무 적게 따르면 원하는 것을 얻을 통로를 잃는다. 반대로 사회를 너무 많이 따르면 남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부르기 쉽다. 직함이 좋아 보여서 일을 원하고, 인정받을 수 있어서 말을 고르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해서 방향을 정한다.

요즘 사람들은 양쪽 사이에서 자주 말한다. 회사는 다녀야 한다. 하지만 회사 인간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돈은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돈 때문에 하루 전체를 내주고 싶지는 않다.

회사와 돈과 평판 사이에서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게으름이나 회피로만 부르면 너무 쉽다. 거리를 두려는 사람은 전부 거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 넘겨주지도 않는다. 필요한 만큼 들어가고, 위험한 만큼 물러난다.

모던보이 노자

회사는 다니지만 회사 인간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돈은 벌지만 돈으로 하루 전체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인정받으면 좋지만 인정받기 쉬운 모양으로 나를 계속 고쳐 쓰고 싶지는 않다. 이 거리감 때문에 노자가 이상하게 새롭다.

노자는 사회 밖으로 도망가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지 말라고 하면서도, 나를 내세우며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회가 만든 욕망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세상과 완전히 끊어진 자리로 가라고만 말하지도 않는다.

세련된 모던보이라는 말이 어울린다면 그래서다. 노자는 양복을 입은 사람도 아니고,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펴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주는 도구를 쓰면서도 사회가 주는 결핍까지 모두 삼키지 않으려는 감각은 현대적이다.

욕심을 버릴 수 있느냐보다, 사회가 말하는 부족함을 어디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일지가 더 까다롭다. 사회 안에서 나를 지키는 일은 대단한 결심보다 선을 매번 다시 긋는 일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