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1 일리아스

일리아스

이름이 너무 많다

『일리아스』에서는 먼저 이름이 앞을 가로막는다. 사람이 나오면 그냥 이름만 나오지 않는다. 누구의 아들인지, 어느 집안에서 왔는지, 어떤 신과 이어져 있는지가 함께 붙는다. 아직 누가 중요한 인물인지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그 이름들을 이미 아는 것처럼 지나간다.

흐름은 이름 앞에서 자꾸 갈라진다. 이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인가. 이 이름은 중요한가. 방금 나온 사람은 다시 등장하는가. 사건보다 분류가 먼저 생긴다.

그 막힘은 작품의 약점이라기보다, 재미가 놓인 자리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데서 온다. 『일리아스』의 세계는 이미 진행 중이다. 오래 전해진 이름과 관계가 먼저 놓여 있고, 이야기는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포켓몬 도감처럼

『일리아스』의 족보는 포켓몬 도감과 닮았다. 포켓몬을 모르는 사람에게 도감은 이상한 정보의 묶음이다. 이름, 타입, 진화 단계, 사는 곳, 기술, 약점 같은 것이 계속 붙는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전부 과잉 정보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 들어간 사람에게 도감은 이야기의 입구다. 이름 하나를 보면 속성이 보이고, 진화 전후가 보이고, 어떤 상황에서 강한지가 보인다. 모르면 잡음이고, 알면 정보다. 더 알면 재미가 된다.

『일리아스』의 누구의 아들 누구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복잡한 족보는 인물을 알아보는 도감이다. 어느 집안에서 왔는지, 누구와 이어져 있는지, 어떤 신의 피가 섞였는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그런 정보들이 인물의 속성과 위상을 알려주는 표식이 된다.

그러면 이상하게 보이던 이름의 길이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쓸데없는 장식이 아니라 캐릭터 카드의 정보란에 가깝다. 이 사람은 어느 계열인가. 어떤 힘을 가졌나. 누구와 연결되어 있나. 싸우면 어느 정도인가.

고대 그리스의 월드컵

비중이 적은 조연처럼 지나가는 사람도,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자기 도시의 영웅이다. 어느 도시에서는 자랑스러운 이름이고, 옆 도시에서는 오래 기억할 빌런이다. 이름 하나가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편과 기억과 감정을 함께 데리고 들어온다.

어느 전사는 이야기 전체로 보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가 떠나온 도시에서는 다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한 집안의 자랑이고, 성벽 안 사람들이 기억하는 얼굴이다. 반대로 그가 쓰러뜨린 상대의 도시에서는 두고두고 미워할 이름이다. 같은 인물이 한쪽에서는 영웅이고, 다른 쪽에서는 빌런이 된다.

이름이 많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이름이 우리 도시의 이름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잠깐 지나가는 전사도 남의 조연이 아니라 우리 쪽 사람이다. 누가 이겼는지보다, 우리 편이 나왔는지, 우리 집안의 이름이 불렸는지, 우리 도시의 원수가 쓰러졌는지가 먼저 귀에 들어온다.

그러면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의 월드컵에 가까워진다. 어느 편이 이겼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도시 출신이 뛰는지, 우리 쪽 영웅이 이름을 남기는지, 미운 도시의 전사가 쓰러지는지가 중요해진다. 혈통과 소속은 줄거리 바깥의 부스러기가 아니라 응원할 이유와 미워할 이유를 알려주는 표식이다. 많은 이름들은 이야기를 느리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라, 이 전쟁을 남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는 장치다.

지금 시대의 도감

지금의 도감에는 다른 이름들이 올라온다. 전쟁터의 전사보다 기업가, 창업자, 기술로 미래를 앞당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자주 영웅처럼 분류된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는 시대를 바꾸는 영웅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험한 빌런이다. 같은 이름인데 도감의 설명은 보는 편에 따라 달라진다.

힘의 종류만 바뀌었다. 칼과 전차 대신 돈, 기술, 속도, 영향력, 야망이 붙는다. 이름 옆에는 회사와 프로젝트와 실패와 논란이 따라붙는다. 누군가는 그 이름을 보고 미래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피해와 오만을 떠올린다. 한 사람의 이름이 여러 도시의 기억을 동시에 끌고 다닌다.

문제는 도감이 대개 긍정적인 영웅상만 크게 싣는다는 데 있다. 강한 사람, 앞서 나가는 사람, 이기는 사람,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더 넓은 칸을 차지한다. 『일리아스』의 도감에서는 명예와 힘이 큰 글씨로 적히고, 지금의 도감에서는 성공과 영향력이 큰 글씨로 적힌다.

그러면 약한 사람, 망설이는 사람, 큰 이름을 얻지 못한 사람은 쉽게 배경으로 밀린다. 도감이 한 사람을 크게 만들 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설명을 줄인다. 영웅이라는 칸은 언제나 빈칸을 함께 만든다.

도감에 실리는 삶

도감에 실리는 인물이 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가. 『일리아스』가 모범적인 인간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쓰였다면, 그 도감의 앞쪽에는 강하고 명예롭고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놓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멋있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잘 산 것인가. 명예를 위해 싸우고, 이름을 남기고, 모두가 기억하는 인물이 되면 삶은 좋은 쪽으로 완성되는가. 그리스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 질문은 더 애매해진다. 지금의 도감은 전사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 강한 사람, 시대를 바꾼다고 불리는 사람을 앞에 둔다. 그렇다고 그 칸에 오르는 것이 좋은 삶의 답은 아니다.

도감에 실리지 않는 삶도 있다. 조용히 버티는 삶, 실패한 삶, 아무 도시의 대표도 되지 못한 삶, 이름을 크게 남기지 못한 삶. 그런 삶은 덜 좋은 삶인가. 『일리아스』의 많은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질문이 남는다. 어떤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가. 도감에 실릴 만한 사람이 되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은 일인가.